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/평가/부정적 평가/정치 (문단 편집) === 간첩 조작 === 일단 특히 규모가 크고 악명이 높은 사건만 해도 '''[[인민혁명당 사건]]''', '''[[민청학련 사건]]''', '''[[동백림 사건]]'''이 있으며, 그 외에도 [[http://www.hani.co.kr/arti/society/society_general/722948.html|울릉도 거점 간첩단 사건]][* 이 사건으로 1977년 12월 5일에 3명이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.], [[http://www.pressian.com/news/article.html?no=106954|미법도 간첩사건]]''', '''[[http://www.ilyosisa.co.kr/news/articleView.html?idxno=4981|심문규 간첩사건]][* 심문규란 사람을 억지로 [[북파공작원]]으로 파견해 놓고 구조하지도 않은 뒤, 그의 6살 난 아들을 후계자로 키우려고 했던 기막힌 사건이다. 그동안 북한에서 간첩 훈련을 받은 아버지는 귀국하자마자 모든 사실을 자백했지만 이중간첩으로 몰려 수감됐고, [[5.16 쿠데타]] 직후 사형당했다. 이 진상은 40년 뒤인 2006년에 밝혀진다. [[http://www.ohmynews.com/NWS_Web/View/at_pg.aspx?CNTN_CD=A0001590054|#]] 다만 이는 시기상으로 보면 [[이승만]] 정부가 간첩으로 조작한 것을 [[박정희]] 정부 시기에 사형한 것에 가깝다.], [[이수근|이수근 간첩사건]][*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POD&mid=tvh&oid=214&aid=0000029637|증거 1]],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POD&mid=tvh&oid=118&aid=0000001761|증거 2]],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POD&mid=tvh&oid=214&aid=0000128453|증거 3]]], [[11.22 사건]][*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POD&mid=tvh&oid=052&aid=0000373629|증거]]],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POD&mid=tvh&oid=057&aid=0000163796|문인간첩단 사건]],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POD&mid=tvh&oid=057&aid=0000171716|형제 간첩사건]],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2rVkZ0yp5rQ|삼척 고정간첩단 사건]][* [[강원도]] [[삼척시]]에 사는 일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간첩으로 몰려 2명이 사형당하고 나머지 10명이 무기징역 및 실형을 받았다.], [[http://konas.net/m/article/article.asp?idx=44366|유럽간첩단 사건]][* 이 일로 박노수 케임브리지 교수와 [[김규남(1929)|김규남]] 민주공화당 의원이 사형당했다.], [[http://db.kdemocracy.or.kr/photo-archives/view/00757861|NH회 학원침투 간첩사건]],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bulletin/2016/01/02/0200000000AKR20160102039700004.HTML|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]][* 대학교에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던 교수를 잡아들여 사형시키고 관련자들을 중형에 처하였다.] 등의 수많은 간첩조작사건[* 물론 위에 열거한 사건 모두 [[대한민국 제6공화국|제6공화국]] 시절 무죄판결을 받았다.]과 [[사법살인]]을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며 [[공안정국]]을 조성하였다. 이렇게 박정희 정권이 권력유지를 위해 행한 추악한 범죄 행각은 '''시간이 흘러 진상이 밝혀지면서 피해자들이 전부 [[무죄]]판결을 받았으나,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.''' [[http://news.donga.com/3/03/20160218/76510699/1|#]] [[간첩]] 식별 요령으로 "새벽에 [[등산복]] 차림으로 나타나거나 갑자기 생활수준이 높아진 자, '''정부에 불만이 많은 자'''를 보면 신고하라"는 허무맹랑한 내용이 적힌 전단을 배포한 경우도 있었다. [[한국전쟁]]이 만들어 낸 (일반 시민도 언제나 간첩으로 몰릴 수 있었던) 한국 특유의 [[반공]] 정신이 과도했던 시대임을 잘 보여주는 경우였다. 실제로 1965년 6월 6일에는 [[유교]]행사를 진행하던 사람들의 선언문을 박정희가 오독하여 그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판단해 3개월 동안 수감하는 황당한 일도 일어났다. [[http://www.hani.co.kr/arti/society/religious/693080.html|#2]] 박정희 정권 시절 억울하게 간첩 조작을 당한 사람들의 기구한 운명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. 2018년 7월 11일에는 박정희 정권 시절 소도둑을 신고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징역살이를 한 농부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. [[https://news.sbs.co.kr/news/endPage.do?news_id=N1004842141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